세계를 도발한 푸틴의 배짱, 어디서 나왔나
◆에너지.식량 자급 경제의 배짱
푸틴이 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 새벽(현지시간, 이하 동일) 긴급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특별작전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지시와 함께 러시아군은 행동을 개시했다. 돈바스 지역은 우크라이나 동남부 러시아인 주민이 많은 반군장악 루간스크와 도네츠크 지역이다. 푸틴 대통령은 돈바스 지역의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우크라이나 점령 계획은 없다"고 했으나, 외신에 따르면 이날 개전 9시간 만인 오후 3시 수도 키에프 북쪽까지 진군하는 등 주요 도시 곳곳에서 러시아의 공격이 동시다발로 이뤄졌다. 남쪽 크림반도에서도 우크라이나 진입 작전이 시작됐다.
벌써 군인과 민간인 피해도 보도되고 있다. 키에프 근처에서 우크라이나 군 40여명과 민간이 10여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러시아 국방부는 "고정밀 미사일로 우크라이나의 주요 군사시설을 공격했다"며 "군사기반시설과 방공체계, 군 공항, 항공기 등이 무력화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러시아의 공격을 확인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이 전면적 침공을 감행했다고 밝혔고 이날 부로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한다고 선언했다. 러시아 헬기가 키예프 인근 군공항을 공격했다는 외신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북쪽 벨라루스에서 출발한 러시아군이 개전 9시간 만에 수도 키예프 북쪽 160km까지 진입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침략국과 피침략국의 규모에서 2차 대전 종전 이후 78년 만에 최대 전쟁이다. 자칫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이 참전한다면 그야말로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형국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약육강식의 주권국가 침공이라는, 수용할 수 없는 '범죄적 행위'임에도 미국 등 서방이 군사개입을 꺼리는 이유다. 푸틴은 또 그 틈새를 이용하고 있다.
푸틴이 서방의 가혹한 경제제재를 무릅쓰고 전쟁을 개시한 데는 잃을 것도 많지만 얻을 것도 적지 않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먼저, 물리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푸틴이 꿈꿔왔던 러시아의 국가위상 회복을 이루는 일을 들 수 있다. 국가적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군사적 모험도 불사한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옛 소련이 누렸던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리려 하는 것이다. 푸틴은 평소에도 옛 소련 해체가 러시아 민족의 비극이었다며 아쉬워했다.
이밖에 경제제재에도 러시아 경제가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세계를 향해 도발을 감행한 배짱의 배경이다. 사실 푸틴 집권 20년 동안 러시아 경제는 상당 수준 성장했다. 무엇보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할 수 있다. 국민의 지지도 현재는 굳건하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고 자유화와 민주화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요구가 분출할 경우 푸틴은 부메랑을 맞게 될 것이다.
◆가혹할 서방의 경제제재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한 이유가 없는 공격'으로 규정하고 단호한 대응 방침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침공 소식을 접한 직후 성명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치명적 인명 손실과 고통을 초래할 계획적인 전쟁을 선택했다"며 "이 공격에 따른 죽음과 파괴의 책임은 오로지 러시아에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동맹, 파트너 등 전 국제사회가 집단으로 러시아에 가혹한 제재를 부과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24일 주요 7개국(G7) 정상들과 논의를 거쳐 러시아에 대한 전면적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러시아의 첨단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기술, 핵심부품에 대한 수출규제가 포함될 것으로 관측된다. UN에서는 러시아의 책임을 묻기 위한 안보리 결의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 정상들도 24일 긴급회의를 열고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논의에 들어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러시아가 막대한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푸틴 대통령이 심각한 국제법 위반을 저질렀다"며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승인 절차를 재검토하겠다는 점을 재차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대국민 담화에서 "러시아에 군사, 경제, 에너지 분야에 있어서 강력한 제재가 내려질 것"이라며 "전쟁 행위에 나약하지 않을 것이며 냉철하고 결단력 있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U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도 적절한 대응책을 결정하고 의회가 즉시 적용할 추가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유럽 동부에 지상군과 공군력을 추가로 배치할 것이며 해군도 추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제재 예상에도 도발한 배경
푸틴의 노림수는 러시아 민족주의를 자극함으로써 자신의 장기집권 기반을 더 강화하는 것이다. 외부 적을 설정하고 내부의 지지와 단합을 유도하는 것은 독재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국가의 힘이 외부의 적에 현시될 때 국민들이 자부심을 갖는 것은 본능적인 것이다. 푸틴은 그렇게 국민의 자긍심을 자극해 지지와 단합을 유도하는 통치술을 구사해왔다. 여기에는 그의 집권 지난 20년 동안 강해진 러시아 경제가 뒷받침되고 있다. 그가 첫 집권한 1999년 러시아 경제는 생활필수품도 부족할 정도로 피폐했다. 그러나 푸틴 집권 후 풍부한 석유 및 천연가스 등 에너지와 넘치는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국고를 늘려왔다. 러시아 국민의 생활수준은 크게 좋아졌다.
특히 국제유가가 2017년부터 고공행진 하면서 러시아의 국고 증가는 가속도가 붙었다. 러시아는 현재 6430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한 세계 5위의 외환보유국이다. 미국 제재를 피하기 위해 주로 금, 유로, 위안화 등 비 달러자산 형태로 갖고 있다. 러시아는 또 1억4200만 명에 이르는 국민을 부양하고도 남을 정도의 식량을 자급하고 있다. 이 때문에 푸틴이 비록 독재자지만 국민 60%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배짱을 부리는 배경이 되고 있다.
◆전쟁 장기화 경우 부메랑 될 것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경제 제재가 에너지 수출뿐 아니라 일반 무역과 금융, 기술 봉쇄까지 광범위하게 확대될 경우 러시아의 피해는 가중된다. 24일 열릴 G7 국가 정상들이 논의를 거쳐 내놓을 전면적 제재 수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미국과 함께 가장 강력한 제재를 준비 중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대국민 연설에서 "외교적 경제적 군사적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고 했다. 군 투입이 아니라 무기와 군사물자 지원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군사적'(militarial) 대응을 밝힌 데서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특히 미국과 EU, 일본은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첨단기술 제품과 부품에 대한 수출 규제에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나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제재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첨단 IT제품의 대러시아 수출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는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배터리, 전자제품 및 부품, 자동차 등이 포함된다. 물론 제재에 참여하지 않는 중국 등에 의한 우회 공급 선이 열려있기 때문에 제재 효과는 제한적이겠지만, 반도체 등 특정 분야에서는 러시아가 입을 피해가 적지 않다.
또 하나의 변수는 1991년 고르바초프 정권을 무너뜨린 군부 쿠데타를 시민들이 나서서 저지한 것처럼 전쟁을 중단하라는 러시아 시민들의 요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푸틴이 자유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저항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예상은 현재 국민 30% 정도가 반 푸틴 성향을 갖고 있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푸틴이 아무리 배짱이 세다고 해도 경제가 붕괴하고 시민의 저항이 거세지면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